‘여기는 진짜다…’ 싶었던 제로하나 컴퓨터박물관 방문기 1편

업데이트:

2021년 초에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당시 방문했던 장소들 중 기억에 남은 장소로 단연 제로하나 컴퓨터 박물관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대한 꼭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개인 사정으로 인해 장기간 블로그 업데이트를 하지 못했었고, 뒤늦게 1년여가 지난 이 시점에서야 글을 씁니다. 1

IMG_5833

제로하나 컴퓨터 박물관은

제로하나 컴퓨터 박물관은 컴퓨터의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에게라도 강력히 추천할만한, 속칭 컴덕을 위한 박물관이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방문 후기 글들을 우연히 접한 이래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이었고, 방문 후 10여개월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라도 꼭 글을 쓰고 싶을 만큼 인상깊은 장소입니다. 박물관 내부 사진을 잠깐 보여드리자면…

IMG_6069

애플 컴퓨터의 역사 그 자체도 있고…

IMG_5906

실제로 매우 잘 작동하는 수많은 8비트 컴퓨터들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개인 박물관으로 알고 찾아왔는데… 도저히 개인으로써 이 많은 컴퓨터들을 수집했으리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다른 박물관이랑 다르게 이 모든 전시물품을 직접 만져보고 사용해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전시물품은 전부 전원을 켤 수 있고, 구동해볼 수 있고, 게임 등을 원하는대로 자유롭게 실행해볼 수도 있습니다.

입구 - 8bit 카페

1층에는 카페(이름이 무려 8비트 카페)가 마련되어 있고 이 곳에서 입장권 구입이 가능합니다. 입장권을 발매하면 관장님이 직접 나오셔서 전시물품들의 전원을 모두 켜고 세팅하고 올 테니 5분 정도만 기다려 달라고 하십니다.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오고 손님이 많지 않아 평소에는 전부 전원을 꺼두시는 것 같더라구요. ㅠㅠ

IMG_5834

입구에서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는데요. 포스기 앞에 고양이가 노트북을 깔고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노트북은 윈도우 98을 구동중인 레트로 하드웨어입니다.

IMG_5859

IMG_5866

그리고 카페 내 손님들이 레트로 게임들을 즐길 수 있도록 한켠에 준비된 코너도 있었습니다.

IMG_5841

잘 작동하는 구형 컴퓨터들을 이용해 레트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습니다. 박물관을 관람하지 않는 카페 손님들도 최소한 추억 속 레트로 게임들을 즐길 수 있도록 설치해 두셨다고 합니다. 사진을 잘 보시면 저 사이에 Apple 창립 20주년 기념 한정판 매킨토시가 있는데, 원래 공식적으로는 한국에 딱 한 대 수입된 제품입니다. 일부 매니아들이 이베이 등을 통해 국내로 들여온게 극소수나마 몇 대 있다고 하는데요. 이곳 제로하나 컴퓨터 박물관에는 무려 4대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2021년 초 기준, 카페 매장 음악도 저 제품을 통해 재생하더라고요.

IMG_5844

언뜻 보기에도 함부로 만져서는 안 될 것 같은, 정말 오래된 여러 기기들이 놀랍게도 멀쩡히 구동되고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자면 이곳 제로하나 컴퓨터 박물관의 모든 전시품들은 자유롭게 만져보고 사용해봐도 됩니다.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이러다가 이 귀한 물건이 고장나면 어쩌지?’ 싶은 물건들마저도 자유롭게 이용해볼 수 있는 신기한 곳이었습니다. 물론 아직 박물관은 시작도 안했습니다. 여긴 1층 로비 겸 카페일 뿐입니다.

1층 전시품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제품들

1층에는 단 두 개의 전시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박물관 유료 관람 코스의 초입이기도 한 이곳에는 먼저 IBM 29 Card punch라는 제품이 놓여 있습니다. 컴퓨터의 역사에 있어서 무척 중요한 제품이라고 합니다. 다만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물건이다보니 저에게 있어서 ‘추억’ 과는 거리가 먼 물건이었습니다만은, 아마도 관장님이 가장 자랑하고 싶어하셨던 물건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대형 컴퓨터를 사용하던 회사나 대학 등의 단체에서 사용하던 천공 카드를 입력하고 기록하는 기기입니다. 덧붙여 이곳 박물관에서 거의 유일한 만지면 안되는 전시물이기도 합니다.

IMG_5875

지금이야 누구나 타자를 치지만, 오래전 타자 치는 것이 기술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빠르게 타자를 쳐 자료를 입력하는 ‘타자수’ 라는 직업이 존재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셨을 텐데요. 그보다 더 전에, ‘천공수’ 라는 직업이 또 있었다고 합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듯, 개발자(!)들이 코드를 짜 주면 그 코드를 천공 카드에 옮기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한편 그 천공 카드를 수출하는 사업이 첨단 IT 사업이자 외화벌이로써 각광받기도 했던 시대였다고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이어서 이름은 모르지만 뭔가 엄청나 보이는 외장 스토리지 장치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물건은 종합 외장 스토리지 같은 물건으로써, 최상단에는 무려 8인치 디스켓을(용량이 256바이트라고 하더라구요. 256Kbyte가 아니라 256Byte 맞습니다. 한글 128글자요.) 꽂아 읽고 쓸 수 있는 장치가, 그리고 그 아래에는 엄청난 크기의 하드 디스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물건은 IBM에서 기업용 제품의 A/S를 위해 스페어로 가지고 있던 물건을 어렵사리 미국에서 직접 공수하셨다고 합니다. 때문에 제품의 연식이 오래되었음에도 실제로 새것과 같은 상태였습니다.

IMG_5872

2층 전시품

8-bit 레트로 컴퓨터 전시장

“부족한 메모리, 그 안에서 어떻게든 구현해낸 당시 개발자들의 위대함”

계단을 올라와 2층에 들어서자마자 입이 떡 벌어집니다. 유튜브에서나 보던 레트로 컴퓨터들이 정말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IMG_5893

IMG_5888

개발자가 되고자 공부했던 저는 오래 전에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들을 보며 늘 궁금했던 점이 있습니다.

‘옛날의 극도로 제한된 컴퓨터 하드웨어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어떻게 돌아가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유튜브에서 관련 자료를 찾다 보면 늘 빠짐없이 등장하는 기기가 바로 위 사진에 있는 코모도어 64라는 기기였습니다. (제품 이름에 64가 있는데, 당연히 64비트 컴퓨터는 아니고, RAM 용량이 64KB라고 들었습니다.) 1980년대 북미 시장에서 초기 가격 595달러의 압도적인 가성비로 널리 보급된 8비트 컴퓨터였고, 당시 코모도어 64를 위한 상용 소프트웨어가 무려 1만여개 이상 발매되었었다고 합니다.

누가 제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전부터 ‘이상적인 컴퓨터’를 구상하라면

  • 유닉스 워크스테이션의 성능(UNIX Workstation Power)
  • IBM PC의 확장성(IBM PC Compatibility)
  • 애플의 그래픽(Apple Graphics)
  • 코모도어의 가격(Commodore Price)

이렇게 4가지를 꼽아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역사에 길이 남은 컴퓨터였습니다.

덧붙여 제가 이 ‘코모도어 64’를 처음 접하게 된 경로 중 하나였던, ‘옛날 컴퓨터들이 영상과 소리(음악)을 재생한 방법’에 대해 다룬 영상을 소개합니다. 16KB의 램을 가진 당시 컴퓨터들에겐(심지어 별도의 그래픽 메모리도 없음) 그래픽은 물론 소리와 음악을 만들어 재생하는 것 자체가 꽤나 큰 과제로 여겨졌습니다. 당시 개발자들이 어떻게 머리를 굴려 컬러 컴퓨터 화면을 출력하고 음악을 만들었는지를 다룬 영상인데 어떻게 이런 조건에서 그래픽을 만들어냈는지 기가 막힙니다. 픽셀 하나하나의 갯수를 따져 당시의 개발자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두 영상 모두 한글 자막이 있습니다.

IMG_5894 2

미국의 전자제품 소매점으로 유명한 RadioShark 사에서 80년대에는 컴퓨터를 만들었다더니, 이런 제품들도 모두 전시가 되어있어 놀랍습니다.

IMG_5897

이곳 8비트 레트로 컴퓨터 전시실 구석에는 뜻밖에도 상당히 모던한, 무려 첨단 펜티엄 프로세서가 장착된 삼성 노트북 컴퓨터가 자리잡고 있었는데요. 자세히 보니 PC통신(웹 브라우저를 통한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 사용되었던 하이텔, 천리안 같은 것들, 텍스트로만 작동하는 터미널을 이용한 인터넷 느낌…?) 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곳 제로하나 컴퓨터 박물관에서는 옛 PC통신의 향수를 되살릴 수 있는 사설 BBS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노트북이 그 서버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여러모로 관장님의 열정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IMG_5909

그 외에도 뭔가 엄청 비싸 보이거나 대단해 보이는 기기들이 많았는데, 실제로 써본 물건들이 아니고 다들 저보다 최소 10살씩은 더 먹은 물건들이었기에 잘 알지를 못해서 제대로 만져보질 못했습니다. 위 사진은 명령행 입력창에 요즈음의 터미널 명령어(ls라던지… cd라던지…) 몇 개를 입력해보고 안돼서 내버려둔 모습입니다. 사진 속 모니터 오른쪽에 컴퓨터 사용설명서가 있어 펼쳐보니 기본적인 명령어들이 나열되어 있더라구요. 근데 명령어라기보다는 프로그램 언어(BASIC)에 가까운 형태였고, 책에 있는 소스를 입력해보니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형태였습니다.

IMG_5916

레트로 게임 & 포터블 기기 체험 공간

8비트 컴퓨터 전시실 옆 방에는 레트로 게임 체험 공간이 있습니다. 도대체 이 게임기들과 컴퓨터들을 어디서 구했고 모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 옆으로는 시대를 풍미했던 PDA 등의 포터블 기기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IMG_5911

사진 속 제품들은 해당 전시실 물건들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말로만 듣던 ‘고인돌’ 게임, 플레이스테이션 1,2 게임들, 닌텐도 패미콤과 그 파생 제품들이 정말 전부 다 있습니다. 심지어는 오래전 닌텐도의 GAME & WATCH 제품까지 있습니다. (게임보이 출시 전 닌텐도가 팔던 게임기(?) 입니다.)

IMG_5924

당연히 모든 게임기들은 이렇게 여러 게임들을 실행해보고, 즐겨볼 수 있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저 수많은 CRT 화면들을 어떻게 구하셨는지도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저것들 전력소모가 엄청날 텐데…

IMG_5925

초기형 xbox도 있습니다.

IMG_5930

닌텐도의 패미콤은 게임이 잘 돌아가는 컴퓨터였습니다. 카세트 테이프에 데이터를 읽고 쓸 수 있으며, 베이직 프로그램을 작성하거나 구동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IMG_5945

게임기도 한 두대가 있는게 아닙니다. 정말 게임기의 역사 그 자체가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IMG_5958

PC 게임도 빠질 수 없습니다. 어디서 구하셨는지 정말 제 어린 시절에 학교에서나 볼 수 있던, 펜티엄 2 정도 사양에 64MB 메모리를 가진 레트로 컴퓨터들을 쭉 전시해 두시고, 그 시대에 유명했던 게임들을 모두 다 직접 해볼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 선반에는, 보시다시피 초소형 PC들과 당시 유명했던 노트북들을 또 쭉 모아놓으셨구요.

IMG_5960

가운데 테이블에도 수많은 포켓 PC들과 PDA들, 그리고 UMPC들이 모여있습니다. UMPC는 PMP나 전자사전 사이즈의 컴퓨터인데, 제가 중학생 때 즈음해서 손에 쥐고 사용할 수 있는 형태의 컴퓨터로 잠깐 반짝 유행했던 제품이고, 엄청 갖고싶었던 물건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손에 들고 다니는 물건으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니 너무 꿈만 같은 이야기였거든요…

IMG_5967

나름 이런 휴대용 전자기기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기기들이 있었습니다. 이게 뭔지 가늠도 안 가더라구요.

레트로 MIDI 장비 전시관

2층의 가장 끝 전시실에는 MIDI 장비들이 가득 있었습니다.

IMG_5974

원래 제로하나 컴퓨터 박물관의 이름은 제주도 내 고등학교 컴퓨터 동아리 ‘제로하나’ 에서 그 이름을 따왔는데요. 제로하나 동아리에서는 MIDI 작곡 팀이 따로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MIDI 장비들도 모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IMG_5976

당시에는 컴퓨터로 소리를 재생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죠. 특히나 노래를 통째로 샘플링해 저장하기엔 용량이 너무나도 컸기에, ‘‘몇 초에 어떤 악기 소리가 난다’’ 라는 정보의 연속이었던 MIDI 파일이 컴퓨터 음악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운드 카드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같은 노래도 다르게 들렸어요.

IMG_5981

2편으로 이어집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놀라운데 아직 1층과 2층밖에 둘러보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3층과 4층이 남아있는데요. 2편에서는 3층과 4층, IBM PC관과 Apple관, 그리고 고전게임기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1. 물론, 후술할 박물관의 사정 때문에 며칠 전 이곳을 또(?!) 다녀오긴 했지만… 그건 아래에서 이야기하는 걸로… 

댓글을 남겨주세요